10여 년 전 학교 졸업하고 한창 크리스찬 베일에 빠져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영화를 정주행 했던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메리칸 사이코는 크리스찬 베일에 대한 관심이 짜게 식어버린 이후로도 지금까지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요즘, 문득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졌다.
파인다이닝에서의 근사한 플레이팅과 식사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
부은 얼굴을 가라앉히는 아이스 마스크팩과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아름답게 시작하는 미남자.
패트릭 베이트먼. 27세.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졸업하고 월가의 유명 인수합병 전문 투자기업의 부사장이라는 직함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멋진 외모와 철저한 자기 관리, 사회적 지위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인물이다.
맨해튼의 고급 맨션에 살고, 약혼녀가 있으며 본인의 친구의 약혼녀와는 내연 관계인 그의 하루는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거나,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지위의 친구들과 어울려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오늘 저녁은 어느 레스토랑으로 갈까!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
인기가 많아 예약을 잡기 힘든 레스토랑 도르시아라든가, 종이의 색감과 폰트가 멋진 명함에는 내색은 안 하지만 환장하기도 한다.
대중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패트릭 베이트먼, 듣는 이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본인의 음악적 취향과 지식을 침 튀겨가며 설파하길 좋아한다.
참고로 이 영화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들, 하나같이 굉장히 좋은 노래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필 콜린스의 The lady in red, Sussudio 부터 시작해서 휴이 루이스 앤더 뉴스의 Hip to be square,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까지. 이때 노래들이 정말 좋은 노래가 많죠. ^^
같은 씬인데 뭔가 복장이 달라진 것 같다? ...-_-;
확고한 음악적 취향뿐이랴 친구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바로잡아주고 세계 기아 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까지 가진 패트릭 베이트먼, 아아 과연 교양인 중의 교양인 모범시민 중의 모범시민이올시다.
폭소를 터트린 장면. 이 부분은 촬영 당시 감독도 폭소를 터트렸다고 하는데, 크리스찬 베일의 기지 넘치는 애드리브이었던 모양. 역시 완소 배우.
매춘부들을 집으로 불러 쓰리썸을 하기도 하는 그. 그런데 섹스 그 자체보다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좀 더 흥분하는 것 같은 이 양반.. 당신 대체 뭐요?
자신의 비서인 진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
막판에 자신의 사무실로 도망쳐 들어와 책상 뒤에 숨어 변호사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장면과 더불어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력에 감탄 또 감탄하게 되는 장면이다.
"샤워할 때는 먼저 물에 반응하는 젤 클렌저를, 그다음에는 허니 아몬드 보디 스크럽을 사용한다.
세안제는 각질 제거용 젤 스크럽이다. 그런 다음 허브 민트 마스크를 바르고 나머지 준비를 한 뒤 10분 후에 떼어낸다.
애프터 셰이브 로션은 알코올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코올은 피부를 건조시켜 더 늙어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수분 크림과 안티에이징 아이크림을 바르고 마지막으로 수분 보호 로션을 바른다.
패트릭 베이트먼은 이렇게 추상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실체는 그저 환상에 불과할 뿐, 진짜 나는 없다.
내 차가운 눈빛을 감출 수도 없고,
악수를 하는 상대가 나와 맞잡을 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또 라이프 스타일에서 나와 유사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나는 거기에 없다. "
연출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패트릭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대뇌 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패트릭 베이트먼의 개소리로 시작해 개소리로 끝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고, 벌써 개봉한 지 20년이 된 영화이지만, 요즘 세상에도 충분히 통용되는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패트릭 베이트먼을 보면서 단순히, '완전 미친놈이네. 저런 미친놈이 세상에 어딨어?' 라고 그냥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주변의 수많은 괴물을 본다.
온갖 거짓과 도금이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났을 때,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본다.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지만, 가장 무서운 것도 사람이라지.
명함, 지위, 사는 집, 걸치는 양복과 넥타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 집에서 마시는 고급 샤도네이와 음악적 감수성, 주된 인맥을 이루고 있는 상류층과의 사회 공동체적 유대감과 그들 앞에서 떠드는 입바른 소리만으로는, 겉에 드러나는 그러한 부분들만으로는,
그 아무도 그 누구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 사람에 대해 안다.'라고 해도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도덕과 양심의 문제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쉽사리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요지경인 세상이지만, 결국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
진심이란 없고, 그 누구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으며, 어떠한 변태적인 욕구에 기인한 본인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도처의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구분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인격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 200여년 전 한 철학자가 남긴 이 말은 여전히 숭고하게 다가오지만,
저런 미친놈들을 맞닥뜨렸을 때,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견지해 온 태도와 가치가 현실적으로 나를 배신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괴물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추천하지만, 꽤 섬뜩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므로 주의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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